017 "말아톤" 영화 리뷰 (반복과 규칙, 엄마의 믿음, 차별 없는 세상)

‘말아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드라마로, 자폐를 가진 청년이 마라톤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낸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스포츠 드라마가 아닌, 인간의 내면과 가족, 사회의 시선을 정면으로 다루며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특히 주인공 초원이 마라톤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넘어 성장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진정한 도전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말아톤 영화 포스터


초원의 세계, 반복과 규칙 속의 일상

주인공 초원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청년으로, 반복적인 행동과 특정한 감각에 강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갑자기 방향을 틀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과 집중력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특히 그는 초코파이와 동물, 그리고 '달리기'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입니다. 초원은 주변과의 소통이 쉽지 않지만, 마라톤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방법을 점점 터득해나갑니다.

영화는 초원의 세계를 단순히 '장애'라는 틀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얼마나 섬세하고 복잡한지를 보여줍니다. 예측 가능한 환경, 반복적인 일상, 규칙적인 루틴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그의 모습은 관객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초원이 불편해하거나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은 자폐인의 감각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주며, 그가 마라톤에 몰입하는 이유가 단순한 취미가 아님을 알려줍니다.

그에게 달리기는 통제 가능한 유일한 세계이며, 동시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달리는 초원의 모습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처럼 장애를 가진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그 안에 있는 인간적인 욕망과 가능성을 따뜻하게 그려냅니다. 관객은 초원의 시선과 걸음에 함께 동참하며,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세상의 이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엄마의 믿음, 가족이 만들어낸 기적

초원의 도전에는 무엇보다도 그의 어머니 경숙의 역할이 크게 작용합니다. 경숙은 초원의 자폐 진단을 받고도 포기하지 않고, 아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과 믿음으로 끊임없이 방법을 찾습니다. 때로는 너무 강압적으로 보일 만큼 아들을 몰아세우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회로부터 배제당하지 않기 위한 절박한 노력의 표현입니다. 그녀는 세상과 싸우고, 제도와 부딪히면서도 아들만큼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경숙은 초원이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놓치지 않습니다. 마라톤이라는 목표는 그녀에게도 희망이 됩니다. 초원이 혼자 힘으로 완주하는 날을 꿈꾸며, 그는 단순한 훈련이 아니라 삶 전체를 건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경숙은 때로는 고립되고, 가족과의 갈등도 겪지만, 결국 아들의 가능성을 믿는 마음 하나로 버텨냅니다. 그녀의 사랑은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진정한 양육의 모습입니다.

가족은 초원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동생은 형이 부담스럽고, 아버지는 체념한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초원이 점차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됩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장애를 가진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현실적인 갈등과 그 안에 숨어 있는 사랑을 솔직하게 묘사합니다. ‘말아톤’은 가족이란 존재가 때로는 가장 가까운 벽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가장 큰 기적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초원의 완주는 단지 한 사람의 도전이 아니라, 한 가족의 성장과 화합의 상징입니다. 마라톤이라는 긴 여정은 초원의 자립을 의미하며, 경숙이 아들을 놓아주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 순간 관객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며 깊은 감동에 젖게 됩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작은 발걸음

‘말아톤’은 자폐라는 장애를 단순히 극복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의 일상과 감정을 존중하며, 사회가 어떻게 그들을 바라보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초원이 겪는 많은 어려움은 장애 그 자체보다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적 시선과 환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장애인 개인보다, 사회의 태도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초원은 학교에서, 동네에서, 심지어 마라톤 훈련 중에도 다양한 차별과 편견에 맞서야 합니다. 그가 이상하게 보이거나 통제가 안 되는 사람으로 인식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회피하거나 조롱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반응을 비판적으로만 다루기보다, 이해와 변화의 가능성을 함께 제시합니다. 훈련 코치가 처음엔 초원을 부담스러워했지만, 그를 진심으로 대하며 변화해 가는 과정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관객에게도 전이됩니다. 처음에는 초원의 행동이 낯설게 느껴졌던 이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내면과 진심을 이해하고 응원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러한 정서적 전이를 통해,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선을 제안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그 다름이 차별의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말없이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아톤’은 초원의 마라톤 완주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단지 감동을 주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초원이 뛰었던 길은 단순한 마라톤 코스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걸어야 할 공존과 이해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말아톤’은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에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인간의 가능성과 가족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영화입니다. 초원이 달린 길은 단순한 트랙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려는 한 사람의 뜨거운 외침이자,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다름’을 향한 존중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도 조용히 세상과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초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이 영화가 전하는 진심을 마음에 새겨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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